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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리틀 포레스트

by 두루마리_휴지 2024. 5. 29.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줄거리

 아픈 아버지의 요양 차 아버지의 고향으로 내려갔던 혜원이네 세 식구. 아버지가 병마 끝에 세상을 떠난 후에도 엄마는 웬일인지 서울로 돌아가자고 하질 않다가 혜원이 수능을 보고 대학교 입학을 목전에 두고있던 어느 날, 홀연히 떠나버린다. 

그나마 동네에 사시는 큰고모가 혜원을 돌봐주다가, 대학 입학통지서를 받고 혜원도 시골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홀로서기가 쉽지 않다.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며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도 싫고, 고시는 떨어졌는데 남친은 붙어버린다. 이래저래 지쳐버린 혜원은 며칠 쉬자는 생각으로 겨울에 어머니와 둘이 살던 시골에 내려온다. 시골로 내려왔지만, 어머니와는 여전히 소식이 닿지 않는다. 시골 이웃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내려온 혜원은 먹을 것이 있나, 집을 뒤져보지만 당연하게도 마땅한 것이 없다. 별 수 없이 마당에 나가 소복히 내린 눈 속에 파묻혀있는 배추를 캐 와 배춧국을 끓이고, 조금 남아있던 쌀로 밥을 지어 따뜻한 국물을 먹고 잠이 든다.

 한편, 이 시골엔 어릴 적 혜원과 같이 자란 친구들이 여전히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서울로 가겠다 했던 은숙은 결국 농협에서 창구직원으로 지내고 있고, 재하는 트럭을 타고 지나가다가 혜원을 보고 웃으며 지나간다. 둘은 연락도 없이 오랜만에 내려온 친구 혜원을 타박하기도 하지만, 혜원이네 집에 자주 놀러 와 함께 음식을 먹기도 하고, 밭일을 도와주기도 하며 시간을 보낸다. 밤이 되면 으스스하고 무서운 여느 시골집이지만, 혜원이 무서워할 것이 신경쓰였는지, 재하가 '오구'라는 이름의 어린 강아지 한 마리를 주고 가기도 한다. 이들의 관계는 때로 복잡하게 얽히기도 하는데, 은숙은 재하에게 마음이 있고 재하는 혜원에게 끌린다. 서로에게 딱히 고백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며칠만 있을 예정이라던 혜원은 어느덧 시골에 눌러앉아 고추도 심고, 다슬기도 잡고, 양파도 심고, 엄마가 하던 것처럼 곶감도 잘 말려주며 사계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느끼지 못했던 소소한 행복감을 느낀다. 미워했던 엄마도 이제는 용서가 된 것 같고, 임용고시에 붙은 전 남자 친구에게 축하 메시지도 보낸다. 그런데 혜원은 또 알리지 않고 어느 날 시골을 떠난다. 은숙과 재하에게 남겨둔 쪽지를 본 재하는 혜원이 '아주심기'를 준비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가을에 일단 심고 짚을 덮어 싹을 틔운 후, 거름을 잘 둔 곳에 아주심기를 해서 겨울을 나는 양파처럼, 잠시 떠난 거라 금방 돌아올 것 같다고 말이다. 재하의 예상대로 혜원은 돌아왔고, 지붕 수리도 스스로 하며 다시 시골 생활을 이어간다.

 

 

2. 후기

 나 역시 도시에서의 삶을 살며 한 번쯤 시골살이를 꿈꿔보기도 했기에 혜원의 지친 마음이 공감되었고, 혜원이 시골에서 보내는 사계절이 마치 내가 그 시간을 보낸 것처럼 힐링이 되었다. 물론 나는 혜원이 같은 요리 실력이 없고, 시골 생활에도 익숙지 않기 때문에 막상 정말로 시골에 가게 된다면 힐링 이전에 아주 힘든 적응 기간을 보내야 하겠지만 말이다.
 리틀 포레스트는 잔잔한 분위기에서 딱히 이렇다 할 만한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대신 혜원이 시골의 사계절을 착실히 흘려보내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 계절에만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수확하고, 다듬고, 만들어서, 소화시킨다. 모두 유통기한 지난 편의점 김밥과는 달리 신선하고, 나의 노력이 들어가 있는 것들이다. 인간은 스스로를 통제하면서 자존감이 자란다고 한다. 혜원이 시골에서 보낸 시간은 단순히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에서 제철 음식과 같은 건강식을 챙겨먹은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통제가 되지 않던 서울에서의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어쩌면 통제할 필요가 없는 곳으로의 여행이었을 것이다.
 많은 현대인이 서울에서의 혜원이처럼 치열하게 살아가지만, 정작 나만을 위한 시간은 잘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리틀 포레스트의 흥행이 바로 그것을 시사한다. 꼭 시골에 내려가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면 참 좋겠다. 만약 당장에 그럴 여유조차 없는 현대인이라면, 이 영화를 보며 잠시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아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