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줄거리
무당 화림과 그의 제자 봉길은 비행기를 타고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 향한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부동산 사업을 해 성공하여 밑도 끝도 없는 부자라는 의뢰인을 만나기 위해서다. 화림은 의뢰인들이 나간 병실에서 아기를 살펴보더니 의뢰인의 집에도 아기와 비슷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챈다. 의뢰인들의 눈이 의심에서 놀라움으로 바뀐다. 의뢰인인 박지용은 '형이 정신병원에 있다가 결국 자살했는데, 그때부터 자신과 갓 태어난 아들한테, 눈을 감으면 누군가 비명을 지르고 목을 조르는 병이 시작됐다'고 설명하고, 이를 들은 화림은 이를 두고 '묫바람, 조상 중에 누군가가 불편하다고 난동을 부리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자기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고, 전문가들을 더 불러야 한다고 화림은 말한다. 그렇게 지관 김상덕과 장의사 고영근까지 네 사람이 이 값비싼 의뢰에 함께하게 된다.
그런데 의뢰인 지용은 다소 의아한 요구를 한다. 파묘를 하더라도 관을 열지 말 것과 최대한 빨리 이 일을 처리하는 것이 그것이다. 파묘 시, 구청에 신고하고 개관하여 유골을 수습하는 것이 관례라 설명하던 상덕은 일단 묫자리부터 보자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강원도 국도를 달려 어째 불길한 공기가 흐르는 지용의 할아버지 묘에 도착한다. 묘소로 향하는 길에는 보국사라는 오래된 절이 하나 있고, 산속에는 까마귀의 울음과 안개가 자욱하다. 산 중턱에 차를 세우고 묘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던 길에는 저 멀리 여우 떼까지 보인다. 잠시 뒤, 산 정상에 도착한 일행은 묘를 바라보는데, 스산하고 어두컴컴한 숲 아래 볼품없이 방치된 묘의 모습은 섬찟하기에 그지없다. 한참 묫자리를 살펴보던 상덕은 지용에게 누가 이 묫자리를 알아봐 주었냐고 묻는다. 지용은 당시 유명했던 기순애 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조부가 나라에 큰 공을 세웠다고 제일 가는 명당 자리를 찾아줬다고 아버지에게 들었다고 말한다. 도굴이 심해 소박하게 모셨다는 말도 함께 덧붙인다. 상덕은 잠시 생각하다가, '이번 일은 내가 못 할 것 같다'고 말하고 산에서 내려와 버린다. 큰돈이 걸린 의뢰에 갑자기 산을 내려가 버린 상덕을 쫓아온 일행에게 상덕은 그 묫자리를 '듣도 보도 못한 음택', '악지 중의 악지' 라고 평하며 저런 곳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지관부터 일하는 사람들까지 줄초상 난다고 말하며 의뢰를 거부한다.
그날 밤, 서울로 돌아온 박지용의 호텔 방에 화림, 상덕이 테이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있다. 화림은 상덕에게 '대살 굿'을 해보자고 설득한다. 끊임없는 설득에 결국 그들은 파묘와 동시에 대살굿을 진행하게 된다. 마침내 관을 찾아낸 화림 일행은 관을 운구하여 화장터로 향한다. 한편, 파묘했던 일꾼들은 아직 구덩이 주변에 남아 돈 될 만한 것이 남아있지 않은지 땅을 쑤신다. 그때, 땅속에서 나타난 인간여자의 머리를 한 새까만 뱀이 일꾼 창민의 다리 사이로 지나가고, 놀란 창민은 뱀의 허리를 삽으로 찍어버린다. 뱀은 비명을 지르며 토막 난 채 움직임을 멈추고, 갑자기 먹구름과 돌풍이 몰려들어 폭우가 쏟아진다. 화장장에 도착한 상덕은 '비 오는 날 화장을 하면 망자가 좋은 곳에 가지 못한다.'고 지용에게 전하고, 결국 관은 인근 군립 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잠시 안치된다. 상덕은 보국사에 들러 묘와 기순애 라는 스님에 대해 알아보려 하는데, 모두가 자리를 비운 그때, 장례식장의 소장이 탐욕에 눈이 멀어 관을 개관해 버리고 만다. 관에서 튀어나온 무언가가 고함을 지르며 마침 영안실에 도착했던 화림을 스쳐 지나가고, 화림은 혼절한다.
관에서 튀어나온 악귀는 지용의 자택으로 향하고, 지용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해한다. 깨어난 화림은 바로 지용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전달하고, '혼 부르기'를 시도한다. 그러나 봉길의 몸에 빙의시킨 혼령을 결국 놓치게 되고, 혼령은 그 길로 지용 마저 해하고 만다.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게 된 상덕은 아기에게 차례가 돌아가도록 하지 않기 위해 화장을 서두른다. 증손자의 목숨까지 해하려던 혼령은 고통스러워 하며 사라진다. 관 안에 들어있던 일제로부터 받은 훈장들과 함께 타오른다.
사건들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었지만, 일꾼 창민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입술은 핏기가 하나도 없고, 충혈된 눈으로 이불을 덮어쓰고 몸을 떤다. '동티'가 난 것 같다고 말하며, 이장하던 날의 일을 상덕에게 전한 창민은 그 뱀을 찾아 치성을 좀 드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다시 묫자리로 향하게 된 상덕은 그 기묘한 뱀의 사체를 거두다 '첩장'을 발견하게 된다. 정체불명의 관이 수직으로 하나 더 묻혀있었던 것이다. 2m는 됨직한 투박한 나무관을 화림, 봉길, 상덕, 영근이 질질 끌다시피 가지고 내려와 보국사 창고에 찹쌀과 말 피로 친 결계와 함께 보관하게 된다. 상덕은 지용의 고모와 통화를 하고, 지용의 할아버지가 친일파였으며, 묫자리를 알아봐준 것이 일본 여우 음양사 '무라야마 준지' 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날 밤, 천장을 통해 관을 뚫고 탈출한 일본 도깨비 '오니'는 보국사의 보살님을 해하고 마을 아래로 내려가 축사의 짐승과 일꾼마저 해한다. 제일 먼저 그것을 발견한 봉길은 화림에게 이를 알리고, 화림은 심각성을 알고 모든 사람을 깨우지만, 결국 자신을 지키려 하던 봉길이 다치고 만다. 병원으로 옮겨진 봉길은 척추에 손상이 있어 큰 병원으로 보내야 했는데, 그 말을 들은 상덕은 지용이 죽기 전 했던 말을 떠올린다.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상덕은 다시 보국사로 향하고, 창고 안 도굴꾼들이 남긴 물건들을 조사한다. 그곳에서 도굴꾼들이 사실은 우리 땅을 지키려 했던 '철혈단'이었음을 알게 된다. 한편 화림은 봉길의 병실에서 언니들과 함께 도깨비놀이를 통해 봉길을 해한 것이 일본 귀신임을 알게 된다. 상덕과 화림은 범의 허리에 꽂힌 쇠침을 지키고 있는 '오니'를 꼬여낸 뒤, 그 자리에 꽂힌 쇠침을 뽑아낼 계획을 세운다. 화림이 은어로 오니를 꼬여 내고 산의 나무인 척 연기하며 시간을 끄는 동안, 상덕과 영근은 말피와 철혈단의 곡괭이를 들고 묫자리를 파헤친다. 그러나 아무리 파헤쳐도 쇠말뚝은 보이지 않고 화림은 오니에 당할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화림이 모시는 할머니가 화림을 지켜주어 화림은 도망치고, 오니는 불타는 덩어리가 되어 다시 무덤으로 향하는데, 이때 상덕은 깨닫는다. 저 오니가 곧 쇠말뚝임을 말이다. 상덕은 힘을 짜내어 나무 곡괭이 자루에 자신의 핏물을 잔뜩 묻힌 다음 오니를 내려친다. '불타는 쇠의 상극은 물에 젖은 나무다.'라는 상덕이 떠올린 음양오행이 맞아들어가고, 오니는 여러 차례 내려친 끝에 소멸한다. 다행히 상덕과 봉길은 모두 목숨을 건졌고, 상덕이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2. 후기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영화다. 그저 허투루 지어낸 판타지 같은 영화가 아니라, 실제 우리나라 역사를 기반으로 한 부분이 많고 다양한 무속적인 고증이 녹아들어 있어서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정보를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실제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민족의 정기를 끊어놓고자 우리나라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은 조선총독부에서 토지 측량용으로 박아둔 것이지만, 땅을 지키고자 했던 한국인들의 저항정신이 그러한 미신을 만들어냈다. 한국은 일제 식민 지배의 피해자였고,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분노의 표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료를 찾아보다 보니 이것을 두고 '저열한 반일 종족주의'라고 이름 붙이며 폄하하는 무리도 있는 모양이다. 직접 나라를 팔지는 않았더라도, 그들이야말로 박지용의 할아버지와 같은 저열한 친일파가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공포 영화를 즐겨보지 않는 나는 '파묘'가 그저 공포영화가 아니라 오컬트 미스터리 영화여서 더 좋았다. 모든 것이 우연에 의해 사건이 전개되는 보통의 공포 영화는 내게 불쾌한 긴장감만을 주었다. 감동도 교훈도 없다. 하지만 파묘에는 있었다. 인간미가 있었고, 가족애가 있었고,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정신이 있었다. 이 영화에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알지 못했을, 우리나라 무속 문화들도 재미있었다. 무속인들이 귀신을 부를 때 휘파람을 부는 것이나, 화림의 대살 굿 장면에서 칼을 땅에 던져 칼날이 밖을 향하면 잡귀들이 나간 것을 의미한다는 것, 신체를 떠난 혼을 부르는 혼 부르기, 빙의된 존재를 속여 정보를 캐내는 도깨비 놀이 같은 것 말이다. 공포 영화를 기대하고 본다면 실망할 수 있지만, 역사 영화를 즐겨보고 오컬트에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 만한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